기업판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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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는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직업을 바꾼 뒤에도 늘 마감을 정해두고 시간과 다투며 일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처럼 제자리를 벗어나려면 두배로 빨리 달려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시간은 나의 적이자 욕망의 대상이었다. 늘 시간에 쫓겼고, 더 많은 시간을 갈망했다.

이제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었는데 웬걸, 이번엔 시간이 쏜살같이 달아난다. 별것도 아닌 일을 잠깐 하고 나면 하루가 저물고 봄인가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다. 나이 들수록 내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데,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아이러니라니. 그래서 시간 쓰는 일에 더 신중해진다. 나이 들면 다르게 살아야 하겠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거북의 시간’을 쓴 동물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는 60살이 되던 해 그런 변화를 느꼈다고 한다. 저자도 신문기자, 작가로 일하면서 시간과 경쟁하며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준비를 시작했다. 시간과 사이좋게 지낼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가 선택한 스승은 “서둘지 않고 장수하며 고요와 끈기의 상징으로 존경받는 태곳적 동물인 거북”이다. 이 책은 그가 거북구조연맹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겪은 거북과의 교감과 느린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거북은 “공룡과도 함께 걸어 다녔던 동물”이다. 화산 폭발, 빙하기,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심지어 소행성 충돌을 포함한 숱한 난관을 견디며 살아남았지만,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착취당하고 학대받는 동물이다. 200년 가까이 장수하는 특성 때문에 가짜 만병통치약과 보양식의 재료로 쓰이고 등딱지는 장신구 용도로 팔려나간다.

책에는 월동지로 이동하려고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는 거북의 고난이 가득하다. 북미에서는 성체 거북의 최대 20%가 차에 치여 죽는다고 한다. 저자가 애정을 쏟는 나이 많은 늑대거북 파이어치프도 도로를 가로지르다 트럭에 치였다. 등딱지가 부서지고 다리와 꼬리가 마비되어 2년간 구조센터에 입원 중이다.

거북의 치유 능력은 놀랍지만 낫는 속도는 느리다. 신진대사가 워낙 느려서 사람의 경우 몇 초 만에 통증을 잊게 하는 약물도 거북에게는 몇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난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거북이 가진 게 시간”이니 문제 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종에게 기다림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기다림에 있어서 거북을 능가할 동물은 없으니까.

거북구조연맹 사람들은 전문 의료인도 포기한 거북을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투박한 방식으로 거북의 깨진 등딱지를 수리하며, 치료가 끝난 거북은 원래 있던 장소에 풀어준다. 다친 거북을 구조하고 거북이 도로를 무사히 건너도록 돕는 선량한 사람들의 노심초사가 딴 세상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저자는 늙은 거북 파이어치프와 자신이 “둘 다 나이가 많다”는 공통점을 자랑스럽게 느낀다. 우리 사회는 나이가 많은 것을 결함으로 여기지만, “삶을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나이 듦은 곧 영광일 터이다. 거북도 마찬가지다. 활력이 나이와 반비례해 떨어지지 않는다. 오래된 것이 새것보다 낫다. “오래된 것에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속도로의 차들처럼 내달리는 시간. 그리고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하고 갱신되는 시간. 느리게 살아가는 거북은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시간은 불가역적이지만 인간의 삶에는 시간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서구에서는 과거를 ‘뒤’로, 미래를 ‘앞’으로 여긴다. 반면 중국어는 과거를 ‘앞’에, 미래를 ‘뒤’에 둔다고 한다. 한국어에도 과거를 앞(전날)에 두고, 미래를 뒤(훗날)에 두는 한자 문화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간이 어디로 향하든 놀라울 정도로 많은 문화권의 건국 설화에 거북이 등장한다. 힌두교와 불교 신화, 북아메리카 부족의 이야기부터 삼국유사에 나오는 ‘구지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화와 민담이 거북을 창조의 모티프로 삼는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는 거북이 없다면 하늘이 바로 무너져 내린다.

저자와 동료들은 코로나19로 종말이 다가오는 듯한 시간을 거북을 돌보며 견뎠다. 세상이 멈춘 순간에도 거북을 통해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치료가 끝난 거북을 원래 있던 곳에 방생하면서 상실의 고통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풀어주기는 인생의 두번째 기회”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치명적인 무기”인 check here 화살로 표현하지만, 저자는 “시간은 화살이 아닌 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거북의 알, 모든 끝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창조의 순간 말이다.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고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삶은 상승하는 직선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후퇴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태어나고, 다시 부서지며 또 나아가고, 낡음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 순환하는 나선의 모양에 더 가깝지 않을까.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한 뒤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즐겁고도 두렵고도 영광스럽고도 필연적인 짐”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거대한 재생의 순환 속에서 살아가자는 저자의 말에 기꺼이 동의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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